8억원대 생명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남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계곡 살인' 피의자 이은해씨(31)와 공범 혐의를 받는 조현수씨(30)가 16일 경기도 고양시 오피스텔에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간 배경을 두고 수사당국이 조력자 존재 가능성 등에 대한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씨 등은 지난해 12월14일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잠적한 뒤 4개월여 동안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지방이나 도서 지역 등으로 도주하지 않고 수도권에 머물렀다. 이들이 검거된 고양시 오피스텔은 주거지였던 인천시 연수구에서 멀지 않고 수사를 담당한 인천지검과도 가까운 편이다. 고양시는 2년 전인 2019년 이씨의 남편 윤모씨 유족 지인의 제보로 재수사를 진행했던 일산 서부경찰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사당국에서는 이들이 외지인에 민감한 지방보다는 오히려 수도권 도심에서 다수의 사람들 속에 섞여 지내는 것이 오랫동안 숨어지내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따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돼 얼굴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데다 비대면 배달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음식 주문이 쉬운 도심 오피스텔이 낫다고 봤을 수 있다.

지난달 30일 검찰의 공개수배가 내려진 뒤에도 이씨 등이 은신처인 오피스텔 주변 거리를 돌아다닌 것으로 파악된 점에서도 이런 '대범한 역발상'을 엿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개수배 이후에도 틀어박혀 숨기보다는 거리를 활보했을 정도로 익명성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이달 초 외출한 모습이 오피스텔 근처 이면도로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에 찍히면서 결국 꼬리가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인근 오피스텔 단지를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하면서 포위망을 좁힌 끝에 수사 과정에서 신뢰관계를 쌓은 이씨의 아버지를 통해 사실상 자수를 설득했다.

이씨 입장에서는 숨어지낸 오피스텔이 지난해 12월 준공된 뒤 올 2월 입주가 시작된 신축건물이라 주민들이 대부분 서로 낯설어 이웃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오피스텔이 입주민 외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그만큼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 등이 수도권 도심 오피스텔에 머문 배경에 대한 또다른 가설은 조력자의 존재 가능성이다. 이들이 지난 4개월여 동안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해 경찰이 추적에 곤란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력자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씨는 이날 체포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도주했을 때부터 해당 오피스텔에 머물렀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비교적 야위고 초췌한 모습으로 체포됐다는 점에서 조력자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최근 수사당국의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이 이씨 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 이날 낮 12시25분쯤 이씨의 아버지와 함께 오피스텔을 찾았을 때 오피스텔 내부에는 페트병에 담긴 생수가 3~4상자 쌓여있었고 집기류도 거의 없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1은 이날 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공개수배자 검거전담팀을 인용해 "도주 생활 중 조력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오피스텔 맞은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이씨가 월세로 들어간 것 같다"며 "임대차 계약할 때는 신분증만 있으면 되니까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빌리면 쉽게 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와 조씨는 이날 오후 3시30분쯤 벙거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양손이 결박된 채 경기 고양경찰서로 인치되면서 "살해 혐의를 인정하는가",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했나", "유족들에게 할말 없나"라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씨는 검은색 모자에 카키색 긴 점퍼 차림, 조씨는 베이지색 모자에 검은색 재킷 차림이었다. 검찰은 이르면 17일, 늦어도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씨는 내연남으로 알려진 조씨 등과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2019년 6월30일 오후 8시24분쯤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모씨를 물에 빠트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같은 해 2월과 5월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윤씨가 사망하기 전 계곡에서 함께 물놀이를 한 조씨의 친구 C씨(30)도 살인 등 혐의를 받는다. C씨는 전과 18범으로 이미 다른 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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