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절반이 관련”…수리남은 정말 마약 국가일까
글로벌 흥행 가도를 달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을 두고 외교 문제 발생 경보가 울렸다. 남미 국가 수리남에서 마약 조직을 운영했던 ‘마약왕’ 조봉행 실화를 각색한 이 드라마가 자국 명예를 훼손한다며 수리남 정부가 법적 대응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마약 산업에 관련돼 있는 나라”라는 극중 대사나 마약 대부가 부패한 정부와 손을 잡고 코카인을 유통하는 모습이 자국을 범죄국가로 비춘다는 게 수리남 측 주장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수리남 정부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면서도 “‘수리남’ 제작진이 우리나라를 마약을 거래하는 야생의 부정적 이미지로 그렸다. 더 이상 마약 운송 국가도 아니고, 그런 행동(마약 거래)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수리남’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국가 이미지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실추했다는 수리남 정부의 말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수리남 모습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수리남은 마약 운송 국가? → 사실
27일 수리남을 관할하는 주베네수엘라 대사관에 따르면 수리남은 한반도 면적의 4분의3 정도 크기에, 인구 58만6600명, 다인종·다언어 국가다.
세계 각국에 대한 정보를 ‘팩트북’ 형식으로 제공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역시 수리남을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로 향하는 ‘코카인 유통국’”, “현지에서는 주로 마리화나를 소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국무부 산하 국제마약사법집행국도 수리남을 ‘마약 운송 국가’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국제마약통제전략보고서(INCSR) 2022’에는 “수리남은 유럽으로 코카인을 운송하는 국가”라며 “화물 컨테이너로 불법 약물을 밀수하며, 코카인은 항공편과 대면으로도 밀수가 이뤄진다”고 쓰여 있다.
특히 수리남은 지리적·사회적으로 마약 유통에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수리남은 마약 생산국들이 밀집한 남아메리카 북단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데다 국토 90%가 열대우림이라는 지리적 특성 탓에 단속을 피하기 쉽다. 여기에 부실한 사법체계도 ‘마약 운송국’이라는 오명에 한몫한다. 보고서는 “인구 밀도가 낮은 해안 지역과 고립된 정글지역, 취약한 국경 통제와 인프라 부족으로 불법 마약 탐지 및 차단 노력을 더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수리남에서 이루지는 마약 유통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코카인 2.2톤, 액상 코카인 4ℓ, 마리화나 7㎏이 처분된 것으로 미 국제마약사법집행국은 파악했다.
수리남에서 들고난 마약이 단속에 걸린 사례는 꾸준히 외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럽 최대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수리남 발 코카인 4톤이 처분됐으며, 지난 1월에는 홍콩 세관이 수리남에서 도착한 컨테이너에 숨겨져 있던 1억4000만 홍콩달러(1800만 달러) 상당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그 다음달에도 접경 국가 가이아나에서 수리남으로 마리화나 58.8㎏을 차로 운송하다 적발됐다. 또 지난 5월에는 영국 법원이 수리남을 거쳐 1억6000만 파운드 상당의 코카인을 들여오려던 마약 밀수업자에게 18년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이 외신에 보도됐다.
◆정부 관료들이 마약 밀수에 연루돼있다 → 대체로 사실
수리남 정부는 드라마 ‘수리남’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드라마 때문에 그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물론 경찰청장·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찬 산톡히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약 밀매 소탕을 위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크리쉬나 마토에라 수리남 현 국방부장관이 외신에서 밝혓듯이 산톡히 정권에서 코카인 압수량이 두 배로 증가하는 등 마약 유통에 대한 강력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수리남에서 마약 운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공공 부문 전반에 부패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해 한국인 마약왕과 결탁하고 그를 비호하는 드라마 속 대통령 델라노 알바레즈는 실제 수리남 전 대통령인 데시 바우테르서를 떠올리게 한다. 바우터스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수리남 대통령을 지냈지만, 1980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천야셴을 수상으로 세운 뒤 사실상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실권자로 군림해왔다.
특히 바우터스는 드라마 속 대통령처럼 마약 밀매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이전인 1999년 7월 그는 네덜란드에서 474㎏ 상당의 코카인을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들 역시 2015년 마약 밀수 혐의로 미국에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는 등 그의 주변인들이 마약 유통과 연루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NCSR에 따르면 마약과 관련된 부패는 경찰을 포함한 대부분 공공 부문에 만연해 있으며, 특히 수리남은 느슨한 사법 집행으로 카지노, 부동산, 환전소, 식당, 중고차 판매 등을 통해 마약 밀매에 관여된 자금 세탁에 이용되고 있다. 관광객이 거의 없고 인구수가 적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카지노를 30개 이상 신설한 것도 자금 세탁을 위한 명목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 외교부 관계자도 “바우터스 전 대통령에 대해 유로폴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여서 언제든 체포될 수 있기 때문에 수리남을 벗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산톡히 현 대통령이 마약 밀매에 엄격해 ‘보안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여전히 정부 내부에 전 대통령의 세력이 있어 근절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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